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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모차르트가 사랑했고, 프란츠 카프카가 평생 떠나지 못했던 프라하, 그 빛을 걷다

글·사진 전영의(세계사강사)

‘나의 오케스트라는 프라하에 있다’라고 했을 만큼 모차르트가 사랑했고, 문학과 사랑 그 어느 것도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도시였지만 프란츠 카프카가 평생 프라하를 떠나지 못했다.
프라하를 걷다 보면 프란츠 카프카의 뜨거운 물음을 외면할 수 없다.
‘당신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프라하를 걷는 동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술가와 연인들의 무대

프라하 성의 황금색 야경. 블타바 강이 석양빛에 물들 때면 사람들은 걷는 것을 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여전히 예술가에게 영감을 선물하고, 연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여행자의 시간을 잡아 세운다

 

3년 전 겨울 동유럽 4개국을 여행했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다.

코로나로 인하여 세계의 문이 닫히고, 자유로운 일상이 멈춰선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다시 얼굴을 맞댈 날을 기다리며, 가슴속에 오렌지빛으로 일렁이는 여행의 추억을 꺼내 닫힌 일상에 위로를 전한다.

동유럽 첫 여행지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이다.

프라하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도 드물다.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다.
수많은 예술가가 사랑했고, 수많은 연인이 청춘을 구가했던 프라하. 프라하가 없었다면 모차르트가 없었고,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뗀 곳이 프라하이고, 체코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시절 <나의 조국>이란 교향시로 민족혼을 일깨웠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죽었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가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영화를 연출한 밀로스 포만 감독 역시 프라하에서 살았다.
젊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우리나라 모 방송국의 특별기획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또한 그 무대가 프라하이다.
프라하를 빛으로 채운 사람들.
그들이 있어 사람들은 프라하를 찾는다.
또 전쟁의 상흔이 얼룩진 피의 땅을 갈고 보듬어 천 년 세월을 일군 프라하 시민들이 프라하가 아닐까 한다.

보헤미아의 군주들이 대관식을 올리고 사후 매장된 성 비투스 대성당

중세 ‘가난한 자의 성경’이라 불렸던 스테인드글라스 성화가 유명한 성 비투스 대성당, 보헤미아 왕들이 머물렀던 궁전, 르네상스풍의 왕실 정원, 사격장 등 프라하 성에는 보헤미아 왕국부터 지금의 체코까지 그 흔적이 장구하다.

카프카의 작업실

황금소로에 위치한 카프카의 작업실
카프카의 향기가 묻어 있는 작업실

특히, 프라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였다가 16세기 연금술사와 금은 세공사들이 살아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작은 골목에는 『성』과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다.
열다섯 채 남짓한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황금소로 22번지, 카프카가 글을 쓰던 작업실 앞에 서니 사진 속 그가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당신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카를교를 걷고 싶어 프라하에 오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카를교. 이 다리 위를 걷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프라하를 찾는다

 

카를교를 꼭 걸어보고 싶었다.

블타바 강물 위에 우뚝 서 체코의 수도 프라하와 구시가지를 잇는 역사와 낭만의 다리, 카를교! 그 다리 위를 걷고 싶어 프라하에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카를교를 찾던 날은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매서웠다. 다리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교탑 안으로 들어서니 금방 걸음이 멈춰진다.

회색빛 하늘 아래서 프라하가 가지고 있는 도시의 색채를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카를교를 걷는 것은 몹시도 설레는 일이었다.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과 악사들의 퍼포먼스,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붓끝이 여행자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블타바 강변에 늘어선 붉은 지붕과 청록색의 첨탑 위로 석양이 내린다.
천 년 세월을 품고 흐르는 백탑의 도시 프라하의 감성이 고즈넉하게 드러난다.
프라하성이 온통 황금빛이다.

성 얀 네포무츠키 조각상

죽음으로써 종교적 신념을 지킨 성 얀 네포무츠키 조각상

카를교를 만든 사람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이다. 다리 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연유했다.

카를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다리 위에 장식된 서른 명의 체코 성인상 중 유독 성 얀 네포무츠키 조각상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유가 있다.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를 들은 성 얀 네포무츠키는 왕비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왕 바츨라프 4세의 협박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고문 끝에 카를교 다리 밑으로 던져졌다.
죽음으로써 종교적 신념을 지킨 그의 순교 장면을 묘사한 부조를 쓰다듬으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그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구시가지 천문시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지의 역사지구

왕의 대관식 행렬이 지나가던 ‘왕의 길’을 걸어 프라하 구시가지로 갔다.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지구답게 루터와 칼뱅보다 앞서 종교개혁을 먼저 일으켰던 얀 후스의 동상을 비롯하여 성 니콜라스 교회, 틴성당, 킨스키 궁전 등 시대의 굵직한 건축물들이 정교하고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며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구 시청사 탑의 천문시계이다.

매 시 정각 시간을 알리며 ‘죽음’에 대한 퍼포먼스로 묵직한 울림을 주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천문시계

매 시 정각 해골 모형이 죽음을 알리는 종을 치면 물질욕, 탐욕, 권력욕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세 개의 인간 군상이 죽음을 맞이한다.
곧 천문시계 위쪽에 있는 창이 열리면서 열두 사도가 지나가고 황금닭이 운다. 그 울림이 묵직하다.
내가 잡고 있는 끈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역사와 문화,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라하. 걸어서 또 트램을 타고 프라하 속속들이 닿았다.

카프카의 침묵
프라하에 입성하자마자 질문을 던졌던 카프카.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그는 한마디 말이 없다.
그는 내게서 이 질문도 거두어가지 않을 모양이다.
‘당신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이제 비엔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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