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처음으로 LPGA투어 메이저 우승 못하고 도쿄올림픽서도 노메달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 여자골프는 올 시즌 그 위세를 잃고 있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 5개 메이저 대회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 8월 초 일본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에선 노메달이었다. 그것도 4명이나 출전하고서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빼앗겼다. 9월 10일 현재까지 올해 열린 LPGA 투어 22개 대회에선 겨우 3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초라한 성적이다. 거의 해마다 차지했던 LPGA 투어 신인왕 등 개인 타이틀에서도 한국은 무관에 그칠 위기다. 올해의 선수상, 최저타수상, 상금왕에선 미국의 넬리 코다가 압도적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신인왕은 태국의 패티 타바타나킷이 유력하다. 한국은 왜 그렇게 됐을까. LPGA 투어에서 한국 여자골프의 현주소와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자.

2021 LPGA 투어 현주소…
미국의 강세와 태국의 부상
올 시즌 LPGA 투어 22개가 열린 9월 10일 현재 미국이 7승을 올려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태국이 4승, 한국이 3승을 올렸다. 그 외 뉴질랜드, 캐나다, 대만, 필리핀,핀란드, 일본, 호주, 스웨덴(이상 우승 국가 순)이 각각 1승을 올렸다.
예년 같으면 한국이 7승 혹은 적어도 5승 이상은 올렸다.
매 시즌 다승 1, 2위를 다툰 나라가 한국과 미국이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군다나 태국에도 뒤지고 있다.
승수 뿐만 아니다. 한국은 이번 시즌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다. 해마다 메이저 대회 우승을 기록한 한국으로선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올 시즌 LPGA 투어에선 더 이상 메이저 대회가 남아 있지 않다. 5개 메이저 대회가 모두 끝났다.

올해 유난히 눈에 띄는 점은 미국이 치고 올라온다는 점이다. 미국은 올 시즌 첫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주역은 제시카, 넬리 코다 자매였다. 특히 넬리 코다는 올시즌 3개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선 금메달도 차지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넬리 코다는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그는 랭킹 점수에서 10.21로 2위 고진영(8.24)과 1.97차로 앞서 있어 한동안 1위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넬리 코다는 다승 부문 뿐만 아니라 평균 스코어, 올해의 상금 등에서도 1위에 올라 1인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넬리 코다 외에 미국 선수 중 제시카 코다, 오스틴 언스트, 앨리 유잉, 라인언 오툴이 각 1승을 올렸다.
태국은 올해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패타 타바타나킷이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하며 골프 강국의 부상을 알렸다. 타바타나킷은 신인상 점수 970점으로 2위 아일랜드의 리오나 매과이어
(758점)에 크게 앞서 있다. 그는 또 넬리 코다를 제치고 올해의 애니카 메이저 어워드도 받았다.
또 그동안 부진했던 아리야 주타누간이 2승(1승은 언니인 모리야 주타누간과 2인 1조로 나간 경기에서 우승)을
올려 극적인 부활을 알렸다. 또 파자레 아난나루칸의 우승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국은 박인비, 김효주, 고진영이 각각 1승을 올려 3승을 기록했다. 다승 부문 3위다. 박인비가 3월 KIA 클래식,
김효주가 5월 HSBC 월드 챔피언십, 고진영이 7월 VOA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2019년 같은 기간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11승을 쌓은 것에 비하면 차이가 크게 난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투어 일정이 예년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메이저 대회 우승은 없었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 10년간 매년 메이저대회에서 1승 이상을 수확했지만, 2021년에는 5개의 메이저 대회를 다 놓치면서 11년 만에 무관에 그쳤다. 특히 2015년 김세영부터 5년간 한국 선수들이 차지했던 신인왕도 올해는 완전히 물건너 갔다.
한국은 김세영에 이어, 2016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2018년 고진영, 2019년 이정은6가 신인왕이 됐다.
고진영은 1위 자리도 넬리 코다에게 내줘야만 했다. 지난 2019년 7월말부터 세계랭킹 1위에 군림했던 고진영(26·솔레어)은 지난 6월말 2위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랭킹 10위 안에 고진영(2위), 박인비(3위), 김세영(4위)과 김효주(7위) 4명이 들어 있다.
세계랭킹 100위 안에는 30명, 500위 안에는 152명이 포함됐다. 이 숫자는 국가별로 볼 때 가장 많은 숫자다. 아
직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의미다.
미국, 태국, 한국 외에 LPGA 투어에서 1승을 거둔 선수는 뉴질랜드의 리디아 고, 캐나다의 브룩 핸더슨, 대만의
슈 웨이링, 필리핀의 유카 사소, 핀란드의 마틸다 카스트렌, 일본의 하타오카 나사, 호주의 이민지, 스웨덴의 안
나 노르드크비스트다.
이 가운데 메이저 대회 우승자는 패티 타바타나킷(ANA인스퍼레이션), 유카 사소(US여자오픈), 넬리 코다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이민지(아문디 에비앙챔피언십), 안나 노르드크비스트(AIG 여자오픈)이다.

8월말 열린 LPGA 투어 마지막 메이저 대회 ‘AIA 여자오픈’에서 톱 10에도 못들어
현재 한국 여자골프의 현주소는 8월 23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끝난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AIG 여자오픈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톱10 안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동안 한국은 이 대회에서 단골 우승국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박인비를 비롯해 김세영, 박성현, 이정은6 등이
우승에 도전했으나 김세영이 공동 13위에 오른 게 최고성적이었다.
안나 노르드크비스트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선수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없는 시즌을 맞은 것이다. 한국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메이저대회에서 매년 1승 이상씩 올렸다. 이번 AIG 여자오픈에 고진영과 김효주가 불참하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메이저대회에서 ‘톱10’에조차 단 한 명도 들지 못했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다.
한국 선수가 LPGA투어에서 처음 우승한 것은 구옥희가 19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핑 대회에서였다. 이후 박세리가 1998년 US오픈과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4승을 올리며 LPGA 투어에서 활약했다. 2002년 박
세리·김미현·박지은이 ‘트로이카’를 이루며 9승을 올렸고 2006년엔 11승을 달성하며 ‘10승’ 벽을 처음으로 뚫었다.

이후 박인비 최나연 신지애 등 세리키즈가 등장하면서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는 10년간 7승을 올리기도 했다. 해마다 LPGA 투어의 절반 가까이를 우승하며 압도적인 지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외신은 US여자오픈은 사실상 ‘US코리아여자오픈’이라고 할 정도였다.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지만 한국은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7승이나 올렸다. 2019년엔 역대 최다승 타이 기록인 15승과 메이저 3승을 달성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선수들 스케줄 관리 등에 이상 생기면서 분위기 바뀌어
그동안 한국은 많은 선수가 LPGA 투어를 누비며 본토 미국 선수들을 앞서는 성과를 보였다. 한국은 20여 명이 활약하며 시즌마다 우승자의 30% 안팎을 차지해 왔다. 30여 개 대회에서 10승 안팎은 한국 선수들 몫이었다. 그러나 2020년 초부터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LPGA 투어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케줄이 조정되면서 일부 대회는 취소되고 한국 선수들은 개인 사정에 따라 한동안 대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선수들이 안정적인 스케줄 관리를 못 하면서 출전 자체가 불안했다.
LPGA투어는 미국과 아시아, 그리고 유럽을 오가며 대회를 개최한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방역이 강화된 국가에서 열리면 상위 랭커들이 출전을 꺼린다. 지난해 김효주는 LPGA 투어에 단 한 차례도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만 출전했다.
문제는 대회 출전뿐만이 아니다. 한 해 우승을 좌우할 겨울 전지훈련도 차질을 빚으면서 선수들의 경기력도 떨어졌다. 여기에 매년 대여섯 명이 신규로 미국 진출을 노리지만 지난해에는 US여자오픈에 처음 출전해 우승한 김아림만이 새로 LPGA 투어에 들어갔다.
태국·필리핀·대만 등 아시아 신예들 기량 급성장…박성현, 전인지, 김세영, 유소연 등 부진
한국이 흔들리는 사이에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하며 ‘애니카 메이저 어워드’(5개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를 수상한 패티 타바타나킷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유카 사소 등 무서운 신인들이 등장했다.
2014년 창설된 애니카 메이저 어워드는 2014년 미셀 위(미국)를 시작으로 2015년 박인비, 2016년 리디아 고,
2017년 유소연, 2018년 아리야 주타누간, 2019년 고진영 등이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이정은6가 24점을받아 11위에 올랐을 뿐 한국 선수는 톱10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파자레 아난나루칸과 슈 웨이링 등 태국과 대만의 루키들도 기량이 급성장했다. 이들은 한국 선수들이 부진한 사이 아시아 선수로선 LPGA 투어에서 첫 우승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핀란드의 마틸다 카스트렌이나 미국의 라이언 오툴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LPGA 투어에서 첫 우승했다. 특히 카스트렌은 핀란드 출신으로 L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한 선수가 됐다.
라이언 오툴은 LPGA 투어 데뷔 11시즌 만에, 228개 대회 도전에서 마침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오툴은 8월 15일 영국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덤바니 링크스(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트러스트 골프 스코티시
여자오픈(총상금 150만 달러)에서 공동 2위 아타야 티티쿨(태국)과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3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반면 한국은 기대주였던 박성현이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성현은 당초 박세리-박인비를 잇는 한국 여자골프의 주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7승을 거두며 순항했으나, 올해 열린 5개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컷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박성현은 극심한 부진 속에 올해 15개 대회에 나가 5개 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했다. 그것도 공동 32위가 최고 성적이다.
전인지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메이저 2승 등 3승을 올린 전인지는 올 시즌엔 준우승이 한 번 있을 뿐이다.
또한 매년 우승을 기록했던 김세영과 유소연도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아직 LPGA 투어는 11월 22일 끝나는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까지 8개가 남아 있다.
박인비와 전인지, 지은희는 후배들의 적극적인 도전독려
LPGA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후배들의 적극적인 도전을 독려했다.
9월 9~12일 열린 KLPGA 투어 ‘KB금융챔피언십’에 참가차 한국에 온 박인비는 더 많은 후배들의 LPGA 무대
도전을 기대했다.
박인비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어린 선수들 피지컬이 좋아졌다. 10년 전과는 달라 이들의 비거리도 늘었다”며
LPGA 경쟁자들의 수준이 더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KLPGA 투어가 활성화되고 충분히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돼 선수들이 해외로 나갈 동기 부여가 약해진 것 같다”며 “(한국 골프가) 확실히 경쟁력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젊은 선수들이 도전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16년 LPGA 신인왕 출신인 전인지도 마찬가지였다.
전인지는 “태국 선수들은 주타누간을 보면서 동기 부여가 되고 LPGA로 온 선수들이 많다. 한국 선수들도 그렇
게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말 KLPGA 투어 ‘한화클래식 2021’에 참가차 한국에 왔던 지은희는 “우승 소식이 뜸해졌을 뿐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 잘하고 있다”면서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에 비해 (신체적으로) 좀 작은데, 코스는 점점 길어지고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에 대한 대비와 보완이 이뤄진다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배들의 조언에 올 시즌 6승을 기록해 ‘대세’로 부상한 박민지는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라며 “해외 투어를 경험하는 것이 내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선택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한편 최혜진, 박현경, 임희정, 유해란 등 젊은 선수들도 코로나19로 불안한 미국보다는 한국에 머무르면서
LPGA 투어 진출에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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