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무불이행(디폴트) 앞두고 부채 한도 늘려 급한 불 껐지만 향후 대책 마련이 관건
–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부채 한도 상향 다시는 민주당 돕지않겠다고 밝혀 변수

미국이 국가 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면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일시 증액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막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12월 3일까지 적용되는 한시적 조치여서 향후 대책 마련 여부에 따라 디폴트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조치에 협력했던 공화당 상원 미치 매코넬 원내대표가 향후 부채 한도 상향에는 민주당을 돕지않겠다고 밝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지금보다 4천800억 달러(약 570조 원) 늘리는 법안에 서명해 미국이 당분간 디폴트 사태를 면하게 됐다고 AP와 로이터 통신 등이 10월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서명으로 미국 정부의 차입 한도는 현행 28조4천억 달러에서 약 28조 8800억 달러로 늘어
난다. 미 의회는 그동안 미국의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격론을 벌였고 미 상원은 지난달 7일, 미 하원은 14일 표결을 통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미 재무부는 부채 한도를 늘리지 못하면 18일에는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 사태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오는 12월 3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돼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기간 안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부채한도 상향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디폴트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상원 표결 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부채 한도 상향과 관련 다
시는 민주당을 돕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한 3조5천억(약 4천130조 원) 달러 규모의 사회서비스 확대와 기후변화 대처 방
안을 위해 부채 한도 상향이 필요한 것이라며 이를 민주당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공화당이 트럼프 정부 시절 대대적인 감세로 부채가 크게 늘어 부채 상한을 올렸던 점을 원인으로 강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번 부채 한도 상향으로 재정 운용에 숨통, 그러나
여야 합의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디폴트 위기

이번 부채 한도 상향으로 미국 중앙 정부의 재정 운용에도 숨통이 트이게 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7월 부채 한도 유예기간이 종료되면서 8월 1일부터 이 한도가 다시 적용됐다. 당시 기준으로 이미 연방 부채가 상한선을 넘은 상황에서 재무부는 정부의 예산 집행을 위해 남은 현금과 비상 수단 등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했다.
이번 합의는 공화당이 하루 전 일시적인 부채한도 증액을 허용하겠다고 제안하자 민주당이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10월 18일까지 부채한도 증액이나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이 디폴트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의회 차원의 대응을 거듭해 촉구한 바 있다.
이번 조치로 부채 한도 연장시한이 12월 3일로 연장되자 CNBC 방송은 “부채한도 연장시한인 12월 전까지 민주당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프라 개발 예산을 둘러싼 당내 갈등을 해소하고 공화당과 합의를 이루는데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번 합의를 반기면서도 공화당이 부채 한도 협상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채 한도 협상은) 정치적인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면서 “우리는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채 한도 일시 연장으로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12월까지 부채 한도와 인프라 개발 예산안을 두고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또 다시 디폴트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미치 매코넬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왜 이런 일이 생겼나?

미국이 부채 한도를 정한 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돈을 꿔 당시 세계제1차대전 참전비용을 대는 것을 반대하는 의원들을 달래기 위해 10억 달러를 상한으로 정했다. 그러나 그 이후 상한선을 계속 늘려 2019년까지 법으로 정한 부채 한도는 22조 달러나 됐다. 당시 의회는 이 한도를 2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사이 미국 부채는 28조 달러 이상이 되며 이 한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연방 정부가 이 부채 한도보다 더 많은 돈을 쓰려면 의회로부터 한도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받거나 한도 증액을 받아야 한다.
이번에도 디폴트 위기를 앞두고 부채 한도를 또 한 번 유예받거나 한도를 높여야 하는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권한을 쥔 공화당 상원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자신들과 협의 없이 앞으로 인프라·사회복지에 4조달러를 쓰겠다는 민주당의 계획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채 한도를 높이지 못하면 10월 18일께 디폴트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막판에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하며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한시적 조치일뿐 그 전까지 의회가 부채한도상향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결국 국가부도로 번진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실제 국가 부도나면 누구 잘못인가

CNN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미 의회가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올린 것은 총 78회다. 이 중 49회는 공화당 대통령
때, 29회는 민주당 대통령 때 이뤄졌다. 어느 당에서 집권하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얘기다. 때문에 그동안 여
야 할 것 없이 초당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내년 중간선거 등을 앞두고 공화당의 반대가 유독 심하다.
반면 민주당은 지금 갚아야 하는 부채의 상당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쌓인 것이라고 반박한다. 게다가 2017년 공화당이 일방적으로 세금을 감면하면서 살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도 주장한다.

대통령이 부도 막을 수 있나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부채 한도를 높일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도 쓰지 않고 있다”며 책임을 공화당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 공화당 도움 없이 해결할 방법은 있다. 액면가 1조 달러짜리 주화를 발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기념주화 발행 권한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발행 후 연방준비제도(Fed)에 예치해 1조 달러를 끌어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돈을 새로 찍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달러화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최근 청문회에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예산조정 절차를 통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고 상원의 과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법도 있
다. 그러나 매번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앞으로 인프라·사회복지 예산안 등을 강행해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선 최대한 아껴두고 싶은 카드다.

미국 의회 건물

미국 정말 국가 부도날까?

CNN의 경제 분석가 크리스 실리자는 “사실 의회가 부채 한도를 높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책임을 서로 미루다 결국은 합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안한 것은 만약의 사태 때문이다. 실제 디폴트가 일어났을 때 그 충격파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당
장 미국 재무부가 지출의 40%를 줄이면서 미국 경제가 타격을 입고, 미 국채를 많이 가진 중국·일본 등을 시작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1년 공화당이 부채 한도 증액을 막았을 때도 스탠더드 앤드푸어스가 7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린 적이 있었다. 이에 연방정부 부채 한도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얘기도 나온다. 경제학자 스테파니 켈톤은 “스스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정부는 돈이 떨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도로·교량·무기·병원 등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옐런 재무장관도 “부채 한도는 대통령과 재무부에 파괴적”이라며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어느 의원이 총대를 맬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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