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바람이 불어닥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선수들이 줄줄이 컷을 통과하지 못하고 짐을 쌌다.
악천후 때문에 대회 나흘째 겨우 2라운드를 끝내자 세계랭킹 2위 콜린 모리카와, 7위 잰더 쇼펄레, 18위 브룩스 켑카가 3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모리카와는 1라운드 73타에 이어 2라운드에선 75타를 쳐 합계 4오버파로 컷 기준 타수에 2타 모자랐다.

이들은 모두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1라운드를 73타를 마친 쇼펄레는 2라운드에서 6타를 잃어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악명 높은 18번 홀(파4)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린 뒤 벙커를 전전하다 트리플보기를 적어낸 게 뼈아팠다. 1라운드를 72타로 넘긴 켑카는 2라운드에서 트리플보기 1개, 더블보기 2개, 보기 4개를 쏟아내며 9오버파 81타를 적어냈다.
대회가 열린 TPC 소그래스의 상징인 17번 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집어넣고 세 번 만에 그린에 볼을 올리고선 3퍼트를 했다. 켑카는 강한 바람 때문에 원하는 샷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던 스피스, 웨브 심프슨, 토니 피나우, 애덤 스콧, 제이슨 데이도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디펜딩 챔피언인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185야드에서 샌드웨지를 치고, 195야드에서 5번 우드를 칠만큼 앞바람과 뒤바람이 정신없이 불었다고 밝혔다.
2라운드 맨 마지막 조에서 경기한 스콧 피어시 덕분에 로리 맥길로이와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컷 탈락을 모면했다. 피어시가 17번 홀에서 볼을 두 개나 물에 집어넣어 쿼드러플보기를 하면서 컷 기준 타수가 2라운드 합계 1오버파에서 2오버파로 바뀌었다. 2오버파로 2라운드를 마치고 마음을 졸이고 있던 매킬로이와 셰플러는 한숨을 돌렸다.

1라운드에서 4타를 잃고 2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쳐 컷 기준 타수에 턱걸이한 김시우(27)는 3라운드에 앞서 기권했다. 대회 첫날부터 악천후로 일정이 꼬일대로 꼬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3라운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파3홀로 불리는 17번 홀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졌다.
함성의 주인공은 2019년 디오픈 우승자인 셰인 라우리. 그가 ‘잭팟’ 같은 홀인원을 터뜨리자 어수선하던 대회 분위기도 확 살아났다. 평소 137야드이던 이 홀은 이날 124야드로 세팅됐다. 라우리가 피칭 웨지로 친 공은 홀을 2m 지나쳐 떨어져 한번 튕기고 나서 강력한 백스핀이 걸리며 뒤로 구르더니 거짓말처럼 홀로 빨려 들어갔다. 라우리는 같은 조에서 동반 경기하던 이언 폴터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가슴을 부딪치는 등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했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상징과도 같은 이 홀 주변에는 3만6000명의 팬이 몰려든다. 천둥과도 같은 환호성이 진동하는 가운데 그린에 도착한 라우리는 홀인원 된 공을 꺼내 물 건너 쪽 팬을 향해 던졌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공을 주운 팬은 18번 홀 티잉 구역으로 달려가 티샷을 준비하는 라우리에게 사인을 받았다.

라우리의 홀인원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소그래스 TPC에서 계속 열리기 시작한 1982년 이래 17번 홀에서 나온 10번째 홀인원이었다. 가장 직전에 나온 홀인원은 2019년 대회 1라운드에서 라이언 무어가 기록했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인 소그래스 TPC 17번 홀은 1년에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약 12만개의 공이 물에 빠지는 걸로 악명 높은 ‘공포의 섬’이다. 9번 아이언이나 웨지로 공략할 수 있는 짧은 홀이지만 사방이 트여 있어 수시로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달라지는 데다 그린이 거북등처럼 생겨 조금만 짧거나 길어도 물에 빠지기 쉽다. 이날도 이경훈의 티샷을 비롯해 29개의 공이 물속에 잠겼다. 2005년 밥 트웨이는 이 홀에서 무려 12타를 쳐 최악의 홀 타수를 기록했고, 지난해 안병훈이 11타를 쳐 2위를 기록했다.

이 홀은 명장면의 무대이기도 하다. 2001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18m 거리에서 3중으로 휘는 내리막 퍼트에 성공하자 중계 진행자가 ‘Better than Most(더할 나위 없이 좋은)’라는 찬사를 연발해 화제가 됐다. 2011년 대회에서는 최경주가 이 홀에서 벌어진 연장전에서 데이비드 톰스(미국)를 제치고 한국인 최초로 정상에 올랐다.
라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골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온 홀인원은 정말 특
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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