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 어려울 때 “회원권을 연장해달라”고 사정했던 골프장 측이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특별한 사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탈회를 통보하는 사례가 2002년 이후 최대의 호황기를 거친 골프업계에 마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2002년이 국내 골프업계, 특히 회원권 시장의 호황기였다면 2015년은 암흑기였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2015 레저백서’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회원제 골프장 166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49.7%)에 달하는 회원제 골프장이 82곳이었다.
이듬해인 2015년 10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골프장은 9곳, 전국적으로 30건을 넘어섰다.
당시 (사)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2014년 골프장 이용객은 총 3,314만 명으로 전년 대비 6.7% 상승하는 등 골프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다. 2023년 현재,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보다는 덜하지만, 골프 산업의 2번째 호황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모든 골프장이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뭄의 단비 같은 호시절임은 분명하다.


혜택 추가, 대신 명의변경 불가
7년 전 회원권 재약정 시기를 맞은 포천의 모 골프장도 회원들의 잇따른 반환금 요구에 진땀을 뺐다. 당시 골프장 측은 기존 회원에게 입회금의 10%를 내주고, 지정회원 1인 추가와 연간 50% 할인 쿠폰 20매를 제공하면서 회원들을 설득했다. 당시 회원권 시세는 입회금 7천만 원짜리 등급기준 4천만 원 수준이었지만, 골프장에 대한 애정이 있고 혜택에도 납득한 회원들은 ‘명의변경 불가’ 조건에도 재약정에 동의했다.
회원권 명의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건 엄연히 시세가 존재하는 ‘자산’의 성격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당시 폭락한 회원권 시장을 보면 회복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회원권 시장이 호황을 맞았을때도 시세 차익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다소 꺼려지는 조건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의 모 회원은 흔쾌히 재약정에 동의했다.
창립회원이기도 한 그는 골프장에 애정도 있었고, 의리를 지키고 싶기도 했으며, 골프장 측이 제안한 혜택도 마음에 들었다. 당시 골프장 측의 간곡한 청원도 있었다. 향후 회원권을 팔지 못하더라도 해당 조건을 종신 계약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그에게 이 회원권은 투자를 위한 자산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이 골프장을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여겼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난 2016년 당시 이 조건에 재약정한 회원들은 상당수였다.


골프장의 태세 전환
다시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골프 산업은 호황기를 누렸다.
회원권 시세도 회복 이상으로 폭등했다. 그러나 이 골프장의 회원권은 명의변경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기에 거래가 없었고, 당연히 시세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계약이 종료될 무렵인 2023년 6월, 그는 골프장 측으로부터 ‘골프회원권 만기에 따른 계약종료의사 표명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받게 된다. 입회 만기일이 도래했으나 “골프장 측은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탈회 해달라”는 요구였다.
당초 7년 전 재약정을 위한 ‘회원 입회계약 변경 약정서(개인)’에는 이 계약의 종료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쌍방(회원과 회사)의 서면에 의한 명시적인 이의가 없을 시 같은 조건으로 자동 재계약되는 것으로 확인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한편 골프장 측이 발송한 공문의 3항에는 ‘당사 회원 정책에 따라 변경 약정상 계약 갱신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본 공문으로써 입회계약 갱신 거절의 의사를 밝히오니, 계약종료에 따른 입회보증금 반환 업무진행을 위한 소정의 서류(탈회신청서 및 회원포기각서)를 작성하여 2023. 7. 1.까지 제출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더불어 입회금 반환 예정일인 2023년 7월 1일부터는 회원권 이용 권한이 제한된다고 했다. 동봉된 회원 포기각서에는 입회금 반환 후, 즉 탈회 후 재입회가 불가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한눈에 보더라도 과거 회원들을 일일이 설득하던 그 골프장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를 비롯한 회원들은 골프장이 이렇게나 일방적이고 단정적으로 돌변한 것은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팬데믹 기간동안 겪은 유례없는 호황기 때문에 골프장이 돌변했다는 얘기다.

기존 회원 밀어내더니 분양 나선 골프장
이 골프장의 기존 회원들은 현재까지도 명의변경을 할 수 없는 조건으로 계약이 유지되고 있다. 팔 수가 없으니 입회반환금을 돌려받고 탈회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상태다.
혹여 거래소를 통해 매수자가 나타나도 명의변경을 위한 재판을 거쳐야만 하기에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골프장의 회원권은 7년째 시세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런 와중에 골프장이 회원권을 ‘분양’하기 시작했다. 분양가는 1억 2천만 원. 모 회원에 따르면 기존 회원들에게 주던 쿠폰 등의 혜택도 없는 조건이지만, 그만큼 회원권 시세가 전반적으로 올랐기 때문에 초기에는 실제로 분양을 받아 입회한 신규 회원들이 있었다. 요컨대 이 회원에게 반환금 6,300만 원을 내주는 대신, 그 구좌를 1억 2천만 원에 팔 수 있게 되니 충분히 남는 장사다. 그에게 주던 혜택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는 골프장 측의 탈회 요청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골프장 측의 꼼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회원권 시세 폭락으로 대다수 회원이 입회보증금 반환 요청을 했을 때도 그는 입회 이래 2016년 재계약 당시까지 반환 요청을 한 적도 없다.
현재의 조건을 먼저 제시하며 연장을 간청한 건 골프장 측이었다. 명의변경 불가라는 악조건이 있었음에도 심 씨는 이에 동의하면서 ‘의리’를 지켰다.
이에 골프장 측에 일방적인 계약종료 거부 의사를 밝히는 내용증명을 두 차례 보냈지만, 골프장 측은 지난 8월 공탁금을 걸고, 탈회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난 여전히 이 골프장을 사랑해요”
그러나 취재를 진행한 9월 현재까지 골프장 측의 별다른 조치는 없다. 회원 자격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를 “회원권 분쟁에 대한 우려로 분양자 모집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으로 봤다.
“결과적으로 기존 회원을 쳐내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분양 초기에는 실제로 신규 회원이 모집됐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모 회사가 체불임금 등으로 시끄럽고, 이 골프장이 말이 많이 나오니까 지금은 거래가 거의 안 되고 있어요.” 분양 회원을 모집해 얻은 재원으로 기존 회원에게 입회금을 반환하려고 했지만, 초기에 분양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과거 비슷한 사례에서 회원의 손을 들어준 몇 가지 판례를 예로 들며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이 골프장의 회원으로서 이 골프장을 좋아하고 사랑한”고 했다. 그 정도 신의와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이 다툼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는 그저 원계약서대로 회원 자격이 연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저는 20년 넘게 여기 회원이었으니까, 그저 내가 골프를 칠 수 있을 때까지는 이곳의 회원으로서 있고 싶다는 거죠.”

유행처럼 번지는 행태
사례자가 겪고 있는 골프장 측의 일방적인 회원권 탈회 요구는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또 이 사례 속의 포천 모 골프장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례자의 측근은 “다른 골프장에서도 비슷하거나 유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골프장들 사이에서 기업 이윤을 늘리기 위한 모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유사한 피해를 본 회원들이 단합해 골프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골프계 한 원로는 “결국 이러한 분쟁은 회원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회원의 손을 들어주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회원에게 회원의 권리가 있듯, 골프장 측에는 경영의 권리는 있다”면서도 시시비비를 가릴 것도 없이 쌍방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사례들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골프장들의 꼼수인지, 더 큰 이윤을 낼 기회를 포착해 세운 경영 전략인지 판가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그들과 분쟁을 벌이는 회원들은 과거 경영난이 극심할 때의 조강지처라는 점이다.
이들은 과거 골프장에 회원권 반환 요구가 빗발치던 때 골프장을 믿고 재약정을 했던 이들이다. 이미 가격을 형성했고, 그 가격에 합의한 쌍방이 계약서까지 주고받은 마당에 ‘시장 논리’ 같은 잣대를 들이댈 일도 아니다. 다만 이런 식이라면 지금의 신규 회원도 수년 뒤 약정이 만기 됐을 때의 골프장 사정에 따라 같은 분쟁을 겪지 말란 법이 없다. 장기적으로 회원권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를 위축시키는 악수가 될 수 있다.

결국 분쟁은 일방적인 통보로 시작된다
골프장이 호황기를 맞아 사업 형태를 바꾸는 건 경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회사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계약 당사자인 회원들의 동의와 납득을 얻지 않은 채 탈회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데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는 황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확신)에게 다툼의 핵심이 될 ‘명시적 이의’라는 표현에 대한 법적 해석을 물었다. 그는 골프장 회원권과 관련해 다수의 소송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사례자의 포천모 골프장 회원권을 둘러싸고 빚어진 사례를 자문한 적도 있었다.
황 변호사는 “회원들은 당초 종신 계약을 기대하고 회원권을 구매하지만, 이후에 분쟁이 일어나는 사례 중 태반이 ‘골프장의 일방적인 통보’로 일어난다”면서 “원론적인 얘기지만 결국, 가장 첫 번째는 계약서를 명확하게 쓰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앞선 사례에서는 ‘쌍방(회사와 회원)의 명시적 이의’라고 기재돼있지만, 황 변호사에 따르면 계약서상 ‘주어’가 빠져서 분쟁에 난항을 겪기도 한다.
실제로 포천 모 골프장과의 분쟁과 관련해 황 변호사가 상담했던 몇 명의 회원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른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다. 계약서야 회원 당사자와 골프장의 1:1계약이니 회원의 권리나 범위 부분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무던한 타입의 회원이라면 계약서상의 ‘표현’이 다소 모호하게 기재됐더라는 얘기다. 그런 회원들은 입회 당시 영업담당자의 ‘알아서 잘 해드리겠다’라는 말만 믿고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계약서 자체를 못 받았다는 회원도 있었다. 입회 당시 계약서를 요청했더니 영업담당자가 “계약서 드리면 이걸로 소송하실 게 아니냐”고 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회원 본인의 주의가 더 필요하다
황 변호사는 “안타깝지만 결국 회원이 되려는 분들이 더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그가 진행 중인 모 그룹 회원권 분쟁 사례에서도 이러한 계약서상 문구가 문제가 됐다.
해당 회원권 계약서에는 ‘요청이 없는 경우 동일 조건 자동연장됨’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상식적으로 회사로부터 계약서를 받는 입장인 회원들은 이를 ‘회원의 요청이 없다면 같은 조건으로 자동 연장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곳 역시 5년 만기 뒤 골프장이 회원에게 ‘재계약 의사가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해당 회원은 그 요청이 자신만이 아니라 골프장이 될 수도 있음은 상상하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황 변호사가 말하는 ‘주어 유무 확인’이 중요한 이유다.

가장 상처받는 건 로열티 높은 회원
골프장과 회원 간 분쟁에 대한 판례를 보면 회원의 손을 들어준 사례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황 변호사는 “골프장은 이런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설령 패소하더라도 해당 회원과 일부의 문제일 뿐, 다소 부당함을 느꼈거나 골프장에 애정이 식은 이들은 그 기회에 떠나고, 굳이 송사까지 만들고 싶지 않아 ‘더러우니 피한다’는 식으로 떠나버리는 회원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완전하지는 않아도 골프장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남아서 ‘버티는’ 회원들에게는 각 회원의 항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조건을 제공해 무마한다. 제보에 따르면 특별히 원하는 조건에 동의해주는 회원에게는 비밀 유지 각서나 소송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하는 곳도 있다. 결과적으로 심 씨처럼 가장 충성도 높은 회원이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한 산업의 호황기는 현대로 올수록 그 판도가 쉽고 빠르게 변화한다. 무한히 팽창하는 것만 같다가도 이내 거품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일도 많다. 어려울 때는 물론이고, 호황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기반인 충성고객을 외면하는 산업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대체재가 충분하고, 개인의 취향과 선호도가 확고해져 가는 시대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산업을 보는 대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경영 전략이라고도, 꼼수라고도 부르기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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